마가복음 6장 1절

김진성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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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장 1절 고향에서 배척당하시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곳에서 떠나 고향으로 가셨다. 고향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안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고향을 꺼리겠지만 예수님에게는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 

더구나 예수님은 불과 얼마전까지 고향에서 계셨고, 알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고, 그 또한 목수로 살아오셨다. 예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예수님에게도 가장 익숙한 곳 그곳이 바로 고향이다. 

이곳에서도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셨다. 다른 곳에서와 동일한 방식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다. 

“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은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

그들은 나사렛 예수를 알기 때문에 더 놀라워했다. 예수님은 그런 가르침을 줄 수 있을만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특별한 계시를 받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 정도로 유식할려면 배워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배웠는가. 저런 능력이 있을려면 무슨 선지자 학교라도 나와야 할텐데 도대체 어디출신인가. 그런거 전혀 없는데.

그들이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예수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3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들이 아는 예수님은 그리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그들이 아는 예수님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분이었다. 어디 목수가 주제넘게 회당에서 가르치고 랍비 행세를 하나. 

어디서 이상한 걸 배워와서 예언자 행세를 하나. 이런 말 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배척했다. 

알기 때문에 주님을 배척한 것이다. 알기는 아는데 전부를 아는게 아니라 부분을 알 뿐이다. 문제는 그 부분을 마치 전체인것처럼 해석하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에 대하여 잘못 판단하게 된다. 

어던 사람은 주님을 현자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혁명가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이는 주님을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이는 주님이 바알세불의 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보이는대로 보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주님을 판단하면 나사렛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주님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존재이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힘이다라 아니라 아는 만큼 모르게 되어 버린다. 

주님을 배척하는 것, 주님을 불신하는 것, 주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전부 똑같다. 결국 주님을 잘 모르는 것이다. 

여러분의 인생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주님을 배척하는 그런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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